연말에는 구세군이 있었다.

매년 12월 퇴근후나 수업 종료후 지하철1번출구에서 올라올때면 언제나 종소리가 들렸다. 다른것에서는 연금받아가서 기분좋은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 밖에는 눈이 쌓이던… kf마스크 따윈 없었던 세계의 일이었다.

뒷주머니를 뒤져 천원, 이천원이 나올때, 나는 나보다 더 안 좋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돈을 주었다. 올해도 따뜻하게 보내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많이 지나고, 지금 구세군의 냄비통은 알바가 담당하고 있다. 스마트해서 이제는 쿠알코드로 송금을 진행한다. 예전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닌것 같다. 나도, 그쪽도.

며칠전 이야기를 적을까 한다..

나는 강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높디높은 저 빌딩은 위에서 나를 짖이겨 죽이려는 거인같이 느껴지고
저 위에서 보는 아래세상은 개미같은 우리들을 바라보는거 같아 갈때마다 기분이 더러워진다.
강남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성형외과는 유교정신이 이상하게 박힌 나와는 상극의 건물이고,
전 회사에서 퇴근시 지켜본 강남은 향락과 아집이 강한 도시였다.

수많은 불야성은 한국의 발전은 자신 덕분이라는 듯이 제각각 등불을 강하게 밝히고 있고
낮은 빌딩에서 사람들을 접대할때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남성, 여성들을 볼때마다
내 지금 모습에 대한 자괴감을 없앨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저 손끝이나 옷자락이라도 닿으면 두근두근하는 나와는 달리, 그분들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경멸의 눈초리롤 나를 볼때마다, 지저세계에 처박히는 느낌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면서 저 높은곳에서 아래를 처다보며 헐떡일 남녀를 망상하며 스스로를 의미없이 위로했었다.

몇년 뒤에 가본 강남은, 아직도 정정했다.
식당에는 화이트 부대가 줄지어 등장하고, 새로이 외국인들이 추가되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사냥감을 찾는 눈빛도 종종 보였지만, 적어도 한국인과 다른점은 외모밖에 없었다. 된장국과 제육볶음을 혼자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는 모습은, 엊그제 저녁거리를 사러 들어간 식당에서 본 옆집 아저씨 만큼 익숙한 광경이었다.

여전히 욕망이 넘치는 도시였고, 여전히 돈이 넘치는 도시였다. 다만, 새로이 생기는건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가 원인이어서 그럴까. 종로나 명동처럼 임대현수막이 조금 보였다. 사람이 넘치는 식당은 많이 줄고 배달 오토바이가 신나게 악셀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줄서서 기다리는 스탁벅스는 더 늘어났다.

내가 항상 다니는 강북쪽과는 다르게, 이곳은 정숙한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촌놈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고, 그저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큰 혁신같은게 없는 한, 강남은 계속 이렇게 존재하겠지. 판교같은 친구들처럼.

그저, 내가 느낀 강남이, 그렇다는 이야기 이다.

이쪽 회사로 와서
설 / 추석에는 거래처에서 선물세트를 보내준다.
항상 받아왔던 거라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며칠전만 해도 보였던 과일상자가 반차로 인해 빠진 날 이후로 안보인다면’
나는 이쪽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의욕이 사라진다.

그리고, 애사심은 지하 맨틀로 처박힌다.
나중에 가면 체념하고, 그냥 내 돈으로 사고 말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기대했을 어머님께 역시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비참해진다.

이직 성공후기에 점점 눈이 가고, 포기했던 코딩에 다시 손이 가는걸 보고,
그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슬프게 느껴진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1억 / 5,000만원을 모으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이러면서 세상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는구나, 이런 결론까지 낸다.
뭐, 나만 힘든건 아니지.
극복하면 전설이고, 영웅으로 불리겠지만, 오르지 못하니까 레어도가 높은거고.

분노가 몸에 쌓이고, 이게 화가 되면서 우울해 지게 될 것이다.
어느순간부터 한계를 넘으면 터지고, 죽겠지. 자살이든, 사회적 말살이든.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거나, 그저 순응하며 사는 수 밖에 없거나

기껏해야 사과 한 박스에 이딴 생각까지 진행된 이 상황이 너무나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