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는 다른 사람

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극히 낮다.
그리고 남을 보는 눈은 극히 높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그녀를 본다.
어제는 눈이 이상해서 탈락이었고
오늘은 옆모습이 너무 이뻐서 합격이었다.
상상속에서 손자 이름까지 지으며 그쪽에서 날 볼 수 없는 각도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헤어졌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리는 역이 달랐으니까.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영혼이 약간이나마 행복했다는 것은 그 사람밖에 모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적속에서
나는 다른 그녀를 찾고 있었다.

이런 하루가 반복된다.
출근할때
퇴근할때
어차피 상상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자위하면서

이렇게 또 한 발, 그녀와 멀어져간다.

지하철에서

때로는 잠을 자고
때로는 화면을 보고
때로는 통화를 하고
때로는 멍하게 있고
때로는 앞사람을 보며
때로는 옆사람과 떨어진다.

출퇴근시의 지하철 풍경을 보면 좌절이 느껴진다.
눈에 힘이 풀렸고
몸에서 분 냄새가 나며
2-3일은 사용하는 듯한 마스크를 보고
더위와 시선에 맞서기 위한 짧은 팬츠를 입고
비싸보이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스마트 폰을 가지고
역에 가까울 수록 빠르게 일어나는 행동을 취하는

우리들

문이 열리면서
오늘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만약 이 목소리 없이
조용한 정적만이 나를 반겨준다면
그건 상당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소리를 내는 사람

원래 의미하고는 다르게 작성될 듯 하지만, 이왕 타이틀을 적었으니… 무라도 뽑아보자.

슬슬 틀니를 준비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I can’t breath는 어떤 가수의 가사를 생각나게 한다. 군대에서 지겹게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추억속에 잠기거나 실소로 지나갈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저항의 첫 단추 적인 의미도 있고, 순응의 마지막 같은 의미도 보인다. 이런 간단한 의미를 떠나서,

이제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작은 소리는 큰 소리에 묻힌다. 작은 소리여도 말의 힘이 강하다면 누구라도 들을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도구의 힘을 빌리면 커지겠지만, 생목으로는 목만 아프겠지.

우연치않게 촬영되었지만, 이후의 영향력은 엄청난 상태이다. 평소에 억눌렸던, 그리고 지금 현재의 코로나 관련으로 수많은 분노가 쌓이고 있었고, 결국 터져버렸다.

먼 나라 이야기인 만큼, TV를 보녀 약탈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럴 수 도 있고, 평소에 다른 방법으로 해소한 욕망(스트레스)을 푸는 방법중에 하나로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행동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난해서 약탈 후 재판매를 노리거나. 나는 이쪽에 무게가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돈이 없을때, 강도로 변하는건 너무도 쉽다… 슬프게도.

인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다른 글에서 적어볼까한다. 아는게 없으니 결국 낙서만 남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