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언제부터인가, 원리, 혹은 원인을 먼저 따지게 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올림픽도 아니고
결과가 최우선인 현대사회의 일면도 아닌
어째서 이런일이 발생하였는가, 이런 생각이다.

단순히,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럴수도 있고,
쓰잘데기 없는 책을 보면서 이상하게 느꼈던 점에 대한 각성일수도 있겠지.

언제부터인건가, 눈치가 강화되면서, 단순히 왜 그런지 생각하는것을 줄인 영향일 수도 있을것이다그저 시키는 대로 해도, 어려운 세상이니까.

손님의 진상이 어느정도 줄어들고, 몸집도 약간 작아진듯 하다는 착각을 느끼는 최근,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려고 힘을 쓰고 있다.
높으신 분들로서도 돈이 굴러가질 않으니 단장의 마음으로 선택한(이라고 느낄) 정책으로 너도나도 스트레스가 2배씩 적립되었고, 하루에 한두번은 119 구급차를 보는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원인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기록을 파지 않는 이상 나 같은 일개 작가로서는 알기 어렵다. 상상력을 펼치면… 로또처럼 되겠지, 엄청 구상을 넓혀도, 결국에는 터지지 않는 그것처럼.

스트레스의 원인이 그나마 한정되어 있다는게 다행일까.
인간관계, 사회관계, 말아먹을 마스크. 주위에서 날라오는 시선. 돈이 없음… 대충 이정도??

세상이 참 힘들다…
그래서 예전에 잠간 보았던 글귀가, 지금에 와서 나에게 깊은 여운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단상

눈에 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역을 신경쓰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는 한 여성
공원 벤치에서 막걸리를 베게삼아 맨발로 아침까지 주무시는 어떤 남성
매일 지하철에서 보는 그 여자
배일 지하철에서 보는 그 남자
깜빡이 따위는 개나 줘버린 드라이버
늦었다고 뛰어가는 저기 저 사람까지.

언제부터 인간관찰이 취미로 격상했는지는 모르겠다.
영웅의 자질을 보는것을까.
이런생각도 잠시, 그저 쓴 웃음만 나온다. 눈으로 영웅을 판별하기에는
내 눈탱이는 너무 오염되었다.

그저, 사람들의 군상을 보며 나중에라도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라는 헛된 기대를 할 뿐.

오늘도 그저 그렇게 보내는것 뿐이다.

영웅이란, 멋대로 만들어지고, 멋대로 죽어간다.

눈에 깃든 빛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다보면 가끔 눈에 띄는 사람이 보인다.
벽에 기대어 앉아 지나가는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 볼 때마다, 약간씩 두려운 마음을 가진다.
마치, 오늘 한 업무의 성과를 파악하듯이.
마치, 오늘 행했던 나태의 시간을 평가하듯이.

흔히들 지하철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의 분류는 크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일을 구하지 못하는 노숙자이고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포기자이며
돈을 구걸하는 거지이고
상남이 필요했던 앵벌이 였으니까.
물론 내가 아는 선에서만 이 정도이고, 더 많이 있을것이다. 술과 친하게 지내면서 대지와 가깝게 지내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의 눈빛은 흉포라는 말이 어울린다. 세상에 대한 증오, 우리에 대한 질투, 자신에 대한 분노. 과거따위는 버린듯, 그리고 현재의 상태도 잊은듯 우리를 바라본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동도 없다. 눈에 담긴 의지가,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너는 오늘 만족하는 삶을 보냈는가.
너는 오늘 후회없는 삶을 보냈는가.
너는 오늘 우리에게 한발짝 더 가까워졌는가.
너는 오늘 우리에게서 한발짝 더 멀어졌는가.

그가 영웅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한 가정에서는 영웅이었다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영웅이었나요? 라고 묻는다면, 한 시대를 풍미한 몰락한 영웅들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영웅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답변을 들어보라고 하고싶다. 스스로 영웅인지. 과거의 유산이었는지

반면교사인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보고 배운다고 해도 세상은 배운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배운대로 열심히 진행했지만, 운이 없었고, 모략에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 사람도 있겠지.

그의 눈빛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상처를 남겼다.